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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삼년산성


  
   ▼ 내가 다니는 서실에서 날씨도 풀렸고 등산한번 가야 할것 아니냐는 말에 무릎도 아프고 높은 산은 
      갈수 없으니 보은 삼년산성으로 등산가자는 말에 약속하고 보은 구경이나 한다고 보은으로 갑니다 
      보은 삼년산성 가는 길에 옥천 안내면 육각정에 들립니다       

  
   ▼ 보은 삼년산성 입구 안내판

  
 ♧ 삼년산성 (三年山城) 사적 제235호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 (430)에 축조 
되였고 소지 마립간 8년 (486) 에 아친 실죽이 
일선군(一善郡) 장정 3천명을 동원해 대규모로 
수리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하여 
삼년 산성이라 부르게 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산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천초기지로 사용되였다 
삼국통일 전쟁때 태종무열왕(654~661) 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접견하는 장소로 이용하였고 
고려 태조 왕건(918~948재위) 은 이성을 점령
하려다 크게 패 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둘레 1680m 최고높이 22m 폭은 
8~10m 에 이르며 동서 남북 4개소에 문지와 
다수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산성인접지역에 대규모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삼년산성은 반원형 
치성과 성내 배수를 위한 수구등 특이한 축성양식
과 축성및 수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법연구에 중요한 산성으로 
평가 받고 있다 

  
   ▼ 산성으로 올라 갑니다 

  
   ▼ 웅장한 산성성곽 축성법은 우물정자 모양으로 서로 엇갈려 수직으로 쌓았다고 함  

  
   ▼ 산성 안내도  

  
   ▼ 산성의 서문 바같쪽과 그리고 서남곡성과 서북곡성  

  
   ▼ 성문이 없다 그래서 kbs 방송국에서 방영한 자료사진 올려 봅니다 옹성이 있는경우 옹성이 없는경우
     지금의 진입로가 아닌 다른 진입로   

  
   ▼ 서문의 안쪽과 그리고 서남곡성 서북곡성 

  
  ♧ 서문지 (西門址)
삼년산성의 주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서문지는 산성문지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성벽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고 
계곡부의 중앙에서 북쪽으로 약간 비낀 지점의 북쪽 경사
면에있어 성밖에서 문의 위치가 확실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또한 서문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2개의 
치성이 배치되어 있어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쉽게 공격
할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1980년 보은지역의 대홍수로 후대문지 아래층에서 1차 
문지로 추정되는 자취가 노출됨에 따라 발굴조사를 실시
힌 결과 서문은 2단계에 걸쳐 조성되였음을 알수 있었다 
1차문지는 기둥홈과 문설주홈 문확홈이 파인 신방석으로
되어 있어며 전체길이225cm 폭422cm  규모로 되어있다
특히 문지방석에서 목 166cm의 마차 바퀴 마멸흔적이 
발견되어 무척큰마차가 통행하였음을 알수있으며 일반적
성문의 구조와 다르게 외부로 열리는 특이한 구조로되어
있다 2차문지는 1차문지가 매몰된후 안쪽으로 들여 조성
하였는데 수해로 남쪽의 신방석 위치가 바뀌어 문구부의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않는다 2차문지는 1차문지와는 
반대로 성문이 안으로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 성문을 들어서면 해자역활을 하는 연못이 있고 이 연못을 아미지라 부른다 신라 문필가 김생이 
     삼년산성을 방문했을때 연못의 둘래가 눈썹같다 하여 蛾眉池 라 부른데서 기안한다고 합니다 
     삼년산성에는 물이 많은데 아미지 남쪽변에 음부 처럼 생긴 바위틈에서도 물이 나오고 그런데 지금
     물이 없는 것은 연못 중앙에 원인모를 큰 구멍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 성문을 들어서서 왼쪽 아미지 옆에 삼단으로 생긴 바위 절벽 이 보인다 
     제일 밑 암벽에는 아미지 (蛾眉池 ) 중간 암벽에는 유사암 (有似巖 )  제일 위쪽 삼각형의 바위에는
     옥필 (玉筆) 이란 글자가 조각되어 있다   

  
   ▼ 성오른쪽 (남문쪽)으로 한바퀴 돌아 봅니다 

  
   ▼ 성 위쪽으로 올라 봅니다 암각자가 있는 암벽산 관리사무소 보은사가 있는쪽이 조망 됩니다  

  
   ▼ 서남 치성에 올라 조망 합니다 보은읍이 한눈에 보입니다 
      ※ 치성 = 雉城: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 삼년산성에도 돈대(墩臺) 또는 여장(女墻 낮게쌓은 담) 이 있었다는데 복원이 되지 않았네요   

  
   ▼ 남문지 

  
   ♧ 남문지 (南門址)
남문지는 남쪽성벽 서쪽 끝에 위치하며 남서쪽 모서리에 
설치된 성위에서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지은 
치성이 방향을 북쪽으로 회전하며 서쪽 성벽과 연결된다
문밖으로 작은 계곡부가 있으며 이계곡부를 중심으로 양쪽
의 능선부로 이어지는 성벽에는 반원형 치성이 설치되어 
있어 남쪽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쉽게 공격할수 있도록 
하였다 문지의 규모는 너비 3.6m 길이 10.8m 이고 높이는
서쪽면을 기준으로 하면 약 5m 동쪽면을 기준으로 하면
9m에 이른다 문의 형식은 사다리를 이용해 오르내리는
현문식으로 두세 차례 개축하다가 결국에는 문입구를 패쇄
하였으며 남문지 부근의 성벽도 두서너 차례 개축했다 
문지 터에서는 온전한 형태의 바닥 확쇠 한쌍과 문에 사용
되였으리라 추측되는 못과 철제 광두정이 출도 되였다   

  
  ◀ 남문은 현문식 이였다는데 현문식의 자료그림
   지상에서 5m이상 높은곳에 위치했던 남문. 
   사다리나 밧줄이 없이는 절대로 오를수 없는 구조  

  
   ▼ 남문에서 남동치성으로 갑니다  
     남문에서 남동치성까지 성곽은 복원되지 않은 옛 축성 그되로 입니다 
     내외 협축식으로 쌓았다는데 천년을 넘게 견디어 온 성이 일부 무너져 내려도 일부는 
     그대로 있습니다    

  
   ▼ 남문쪽에서 내려본 서문쪽 조망 

  
   ▼ 남동치성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는 전망대 데크로 되어 있고 입간판에는 인근 고분군에 
      관한 안내가 있습니다  

  
   ▼ 남동치성에서 남동쪽으로 가까이 구병산 과 멀리 속리산 이 보인다    

  
   ▼ 남동 치성에서 서쪽으로 보니 남동치성에서 남문까지의 성곽  멀리 보은읍 조망까지  

  
   ▼ 남동 치성에서 동쪽으로 본 성곽   

  
   ▼ 남동 치성에서 내려와 동쪽성벽을 돌아나오니 동문바캍쪽이 보인다    

  
   ▼ 동문쪽으로 내려오는 길과 수구문 

  
   ▼ 동문지  

  
 ♧ 동문지는 산성에서 가장긴 동쪽 성벽의 중앙에 있으며
이곳에는 성문을 관통하는 수구가 있다 
동문지의 원래 모습은 성벽의 안쪽 약 절반정도가 다른
곳보다 북쪽으로돌출되어 있고 'ㄹ' 자형으로 돌아야만
통행이 가능한 형태였다 지표에 남은 모습을 보아 동문 
지는 적이 공격해 올때 방어를 겸비한 특이한 성문구조
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두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동문
지는 적어도 서너 차례에 걸쳐 수축하고 개축 했으며 
 'ㄹ'자형 구조는 후대에 문지 조성과정에서 축조된 구조
물로 밝혀졌다 
발굴조사결과 동문지 인접 성벽 위에서 삼국시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인 여장이 발견되였고 안쪽의 평평한 곳에서
방어확 돼지모양의 기와조각 목제망치 등 다야한 유물이
출토 되였다 

>
  
   ▼ 동문지의 ㄹ자 형의 자료 그림 
     지금은 가로막 축성이 없는 상태 
  
   ▼ 옆쪽에서 본 동문과 문주변 성곽  

  
   ▼ 동문지에서 조금 오르면 데크계단길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동북곡성이다     

  
   ▼ 동북곡성에서 본 북문지와 북쪽 성벽  

  
   ▼ 북쪽 성벽 성의 안쪽  

  
   ▼ 여기는 북문지 

  
♧ 북문지는 성문 밖으로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어 북문으로  
접근하는 적들을 쉽게 방어 할수있는 독특한 구조의 성문
양식으로 보았으나 발굴조사 결과 차단벽으로 추정되던 
시설은 후대에 축조된 치성으로 밝혀졌으며 현재의 성문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북문지 입구에는 처음쌓은 성벽이 붕괴된후 성벽의 채움석
을 정리한후 문구부를 설치 하였고 바닥면은 바깥쪽으로 
경사 지도록 하였다 규모는 폭은 3.5~3.6m 길이는 7~7.5m 
에 이르며 문구부 안쪽에서 성안으로 통할수 있는 6m 너비
의 계단이 1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후대에 조성된 치성은 처음쌓은 성벽의 바깥면에 빗대어 
축조한것으로 길이6.6~7m 너비12~13m 의 규모이며 양쪽 
측벽과 모서리부분이 심하게 붕괴되어 있다 또한 치성 상부
에서 4개의 초석이 발견되였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는 정면 5~6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 북문에서 조금 내려가면 건물가 있다 하여 내려 가본다  지금은 보은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국가 사적지에 절이 어떻게 세워 있는지 알수 없고   

  
   ▼ 절 옆에 미륵전이 있어 가본다 이것은 또 문화제 청에서 건축하였다 한다 

  
 ♧  보은 보은사  석조여래 입상
  보은사는 1902년 박경하 스님이 창건 하였다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 인근 대야리에서 이곳
  으로 옮겨 왔다 크기는 높이 210cm 어께폭 
   50cm 이다 
   몸체의 조각기법과 얼굴의 조각기법이 서로
   달라 전체적으로 볼때 조화롭지는 않으나 
   수인의 형상과 앞면부터 뒷면까지 이어진 
   옷 주름의 유리함 등으로 볼때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 천막이 있는 부분이 성안의 연병장, 건물터로 추정되고 
     사진 중앙쯤에 뽀쪽 봉우리가 남동치성이있는곳이다 

  
  ▼  다시 북문으로 올라 북문곡성 쪽으로 오르면서 내려본 북문쪽과 동북곡성쪽  성밖은 많이 붕괴되어 
      있고 동북곡성은 마치 망루같이 우뚝 합니다  

  
   ▼ 북문곡성은 산 비탈로 되어 있어 성곽이 뚜렸이 보이지 않고  곡성을 돌아 나오니 서북치성 이
     보인다 이로서 성을 한바퀴돌아 서문에 돌아 왔습니다 
     오늘은 등산이 아니라 성 탐방이 더 가깝습니다 

 

  
 ♧ 서북 치성에 올라 내려보니 근래에 복원한 성이라         
그런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배가부른 현상에 지주로 
배부른 현상을 막고 있군요  아마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고 쌓은것이 던지 무게을 이기지 못한 중간돌의 탈출
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옛날 선조들의 기술과 노력을 생각 해 보면 현재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 생각 됩니다  
       

 

  
   ▼ 삼년산성에서 홍수로 떠내려온 돌을 모아 쌓아 놓았다 성 복원에 쓰일 보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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