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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다시 오른 계족산


  
   ▼ 오늘은 탁구대회 관계로 출전하는분과
     개인사정으로 탁구장에 못나오는 분들이
     많아 운동을 쉬기로 하니 끈떨어지 연 
     처럼 혼자 남았고 ... 
     그저께 오른 계족산 풍경사진은 콤에 
     옮기는 과정에서 날아가  무지하게
     아쉽고 하루 비가 왔지만 그래도 휘날리는
     꽃잎을 조금 건질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운동도 쉬니 계족산을 다시 
     한번더 올라 하루 땜방하겠다는 생각으로
     김밥을 두줄 준비하고  비례사로 올라 
     읍내동으로 내리겠다는 복안을 갔고 
     동네를 거쳐가는 314번 버스를 타고 
     동춘당 공원앞 종점에 내립니다 
  
   ▼ 동춘당 공원과 동춘당  대전에 오래 살아도 이쪽은 생소 합니다  공원을 둘러 구경하고 갈 생각 
     『 동춘당(同春堂)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1606년 ~ 
       1672년)이 48세가 되던 해(1653년)에 지은 별당(別堂)으로 대전광역시 송촌동 동춘당 공원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이 돌아가신 6년 후 1678년(숙종 4년)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건물은 송준길의 아버지 송이창이 세운 것을 송준길이 48세인 1653년(효종 4년)에 헌 목재를 
        그대로 써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다. 』

     
   ▼ 동춘공원
     『 현재 동춘당 공원은 약 1만 7천평으로 송촌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동춘당 일대를 공원화 한 
       곳으로 공원 후편에 운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림환경과 동춘당앞 일대에 너른 마당과 연못을 
       조성하여 인근 아파트 주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2009년부터 2010년, 동춘당 명품공원화 사업을 진행하여 공원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원 한편에 불타는 듯 온통 꽃으로 덥힌 집으로 구경하러 갑니다   


  
   ▼ 송용억 가옥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살기 시작하여 현재 11대손 까지 살아오고 있는 집이다. 
      이곳은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꾸어 줄만한 여류 문인인 호연재 김씨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송병하의 며느리인 호연재 김씨는 여성 특유의 감성을 담은 많은 시를 남겼다. 
      안채와 큰사랑채·작은사랑채, 가묘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인 소대헌이 있고 
       오른쪽에 작은사랑채인 오숙재가 있다. 큰사랑채에는 넓은 대청과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달았다. 안채 앞에 위치한 작은사랑채는 오른쪽 끝에 툇마루를 한단 높게 두어 운치를 살렸다.
      안채는 작은사랑채의 왼쪽에 나있는 중문을 지나서 출입할 수 있다. 최근 대청에 유리덧문을 달아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안채의 뒤로 돌아가면 구릉 위에 가묘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가 2동이나 있어 사랑채의 
       기능이 확대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은 개방적인 배치를 하고 있어 기호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 작은 사랑체 오숙제 앞 철죽 앞에서 한컷 합니다  머리털나고 이렇게 큰 철죽나무는 처음 봅니다 
     꽃도 크고 화려한것이 철죽이 아닌것으로 착각할 정도     

 

 

 

 

 


  
   ▼ 큰 사랑체 소대헌 앞 화단의 철죽과 자목련     

 

 


  
   ▼ 가옥을 나와 담 모퉁이 에서 담 밖에서 본 철죽도 장관 입니다              

 


  
   ▼ 가옥을 옆으로 돌아 나오니 연못가 느티나무 아래 멋진 정자 공원조성으로 만든것 같음    

 


  
   ▼ 공원을 지나  선비마을 아파트 4단지 앞을 지납니다 


  
  ▼ 산으로 오르기 위해 송촌굴다리를 지납니다 
    당산나무를 보면 과거 송촌동 읍내동 법동 등이 유래가 깊은 동네 인것 같습니다 


  
  ▼ 구청에 돈이 남아 도는 모양입니다  길갓 조형물은 한시가 적혀 있는데 ...  지나는 등산객이 글 좋다고
    멋쟁이 구청이라 하는 군요     


  
  ▼ 비례사 앞 자비에 관한 이야기 의 비와 폭포  사진으로 보니 굉장한 폭포 처럼 보입니다 


  
  ▼ 옥류각 회덕일대가 송씨 가문의 유적 일색이군요             


  
  ▼ 비례사의 ...    

     
   ▼ 산 중턱의 벗꽃... 벗꽃이 아닌가 복사꽃? 겹사꾸라? 꽃잎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떨까?  


  
  ▼  절고개 기대에 반하여 꽃잎은 하루 차이였는데 다 떨구어 꽃자루만 남아 빨게 보입니다 

 


  
  ▼ 임도로 조금 내려가서 개나리와 벗꽃이 잘어우러 지던 장소에도 황량하니 실망 다시 헬기장으로 갑니다       


  
  ▼ 헬기장에서 조망 법동골도 잘 보이고 대청호도 잘보인다 아마 비온후의 날씨라서 그런것 같다     

 

 


  
  ▼ 임도 삼거리에 다와가는 곳에서 단체 산행객을 만난다  대전에서 단체로 올 턱이 없고 외지에서 오는 
    모양인데 계족산도 꾀나 인기가 있는 산인가?     


  
  ▼ 임도 삼거리의 벗꽃도 다 떨어지고 황량 합니다     


  
  ▼ 임도 삼거리에서 계족산 정상으로 가는 길로 갑니다  적당한 벤치를 찾아 싸가지고 간 김밥을 풀어 
    먹습니다 쓸쓸해 보였던지 청설모가 동무하자 찾아 왔군요   


  
  ▼ 진달래도 어제 비에 다 떨어져 볼폼이 없습니다  산길이 요정도 오름이면 좋겠지요   


  
  ▼ 계족산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클라이막스  일명 천국의 계단  오르기전 제비꽃이 반깁니다 


  
  ▼ 계족산 정상 어김없이 조망 합니다

 

 

  
   ▼ 봉황정 여기에서는 대전시내  조망이 가능한곳 


  
  ▼ 오늘 바람은 많이 불지만 날씨가 맑고 깨끗하여 멀리까지 조망 됩니다  갑천과 엑스포장 일대 보문산과
    쌍둥이빌딩 식장산과 경부고속국도 등

 

 


  
  ▼ 내려 갑니다 소나무 가지 터널을 지나 용화사 임도와 만나는 곳 


  
  ▼ 여기 봉황마당이 조성 됩니다 


  
  ▼ 봉황을 손으로 받치고 있고 둥지에서는 새끼가 태어나고 봉황알이 있네요 
    봉황의 비상을 염원하는 구민의 마음을 담아 세우다  이렇게 쓰여 있군요 


  
  ▼ 계족산 봉황정과 봉황마당 정자와 한 구도로 잡아 봤습니다 


  
  ▼ 내려가는 길에 잘 만들어진 묘를 보면서 후손을 잘 만난 분들이구나 생각하며 내려 갑니다 


  
  ▼ 읍내동 산행인을 위한  무료 주차장 을 지나고


  
  ▼ 대덕구 노인종합복지관 언젠간 여기 와서 놀아야 할까? 
    주변에 멋진 소나무 와 정자 대덕구에 정자가 많군요 선비가 많은 고장이라 그렇겠지?

 

 


  
  ▼ ‘세외성산(世外聖山)’은 ‘속세를 떠난 성스러운 산’이란 뜻으로 곧 계족산을 말한다.


  
  ▼ 덕원(德源)의 뜻은 글자 그대로 ‘덕의 근원’이다. 암각이 발견된 계족산 주변은 ‘회덕(懷德)’이란 지명으로 
    더 유명하다. ‘덕원’은 ‘덕을 품는다’는 ‘회덕’을 달리 풀이한 것이다.
    세외성산과 덕원의 비석을 더욱 빛나게 하는것이 뒷쪽 꽃이 받쳐주기 때문이 아닐까 ?  이꽃이 무슨꽃
    홍매화 겹사꾸라 하여튼 화려 합니다 
 

 

 


  
  ▼ 보호수 수령 370년된 느티나무 


  
  ▼ 느티나무 아래 개울건너 우물이 하나 있는데 임천이라 하는데 ...
   ‘임천(林泉)’이란 암각도 있고. ‘숲속의 샘’으로 ‘세속의 때를 벗어난 은둔한 선비’란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쌍청당 송유 선생 등이 이곳에 숨어 살면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그 후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새긴 글로 추정된다. ‘시냇물에 깨끗이 씻는다’는 ‘완계(浣谿)’도 있다. 
     계족산 비래사 근처에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세운 옥류각(玉流閣)에는 선생 친필의 ‘초연물외(超然物外)’ 
      네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역시 ‘자연을 초월하고, 세상과는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밖에 강태공의 낚시터와 비슷한 곳이란 ‘반계명월(潘溪明月)’과 거문고를 타는 바위인 ‘금암(琴巖)’도 
      대표적인 암각으로 손꼽힌다. 
     계족산과 회덕은 이렇듯 옛 선비의 고고한 인품과 멋스러운 풍류가 서려 있다』


  
  ▼ 이직 피어 있는 자목련 아니 홍목련 


  
  ▼ 읍내동 굴다리를 지납니다 


  
  ▼ 읍내동 굴다리를 나오면 후곡공원이 있고 후곡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고 


  
  ▼ 공원을 끼고 전통 가옥이 보이는데 제월당과 옥오제 라는데... 


  
  ▼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넘어로 찍어 봅니다 
   『 제월당 송규렴(霽月堂 宋奎濂 : 1630∼1709) 선생은 효종 4년(1653)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전적(典籍)과 삼사(三司)의 언관(言官)을 두루 거치고, 현종 4년(1663) 용담현령(龍潭縣令)을 
      지낸 후 관직에서 물러나 회덕(懷德)으로 돌아와 학문에 열중하였다. 
      그후 일시 관직에 나아갔으나 숙종이 즉위한 후 그의 두 스승인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이 유배당함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이 건물을 지었다(현종 2년, 1676). 건물 이름을 「제월(霽月)」이라 한 것은 
      그의 선조 쌍청당 송유(雙淸堂 宋愉)가 마음속에 깊이 담고자 했던 광풍(光風)과 제월(霽月)의 쌍청(雙淸)
      중에 하나인 제월을 취했음이며, 이는 선조의 맑은 뜻을 잇고자 함이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제월당 건물은 홑처마 민도리집이다. 
      옥오재는 ㄷ자형 평면에 안채와 사랑채를 겸하게 꾸민 전통적인 민가양식으로서, 옥오재 송상기
      (玉吾齋 宋相琦) : 1657∼1723, 제월당 송규렴의 아들)가 지은 건물이다. 
      자신의 호와 건물 이름을 「옥오(玉吾)」라고 한 것은 차라리 깨어지더라도 옥(玉)을 택하겠다는 소신 
      즉,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도 충성스러운 말과 도의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기개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선생은 경종 2년(1722, 신임사화(辛壬士禍))에 강진에 유배되어 유배소(流配所)에서 
      별세하는 최후를 맞이해도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선생은 대제학(大提學),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문정(文貞)의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 공원끝 이정표에 어울림마당이 있다는 곳으로 간다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옆으로 일품 소나무가 조경
    되어 있고 어룰림 마당은 그늘집이 있고 모과나무 꽃이 한창이다 


  
  ▼ 어울림 마당에서 고속도로변을 따라 쭉 동춘당 까지 연결되어 있군요 동춘당에서 시작하여 원점 회귀
    산행이 가능 하겠습니다 


  
  ▼ 후곡공원과 제월당 그리고 계족산 한장에 담아 봤습니다 
    오늘 산행은 산행보다도 옛 회덕의 문화탐방이 더 주가 아니였나 생각될 정도로 모르던 문화재를 
    접하고 느낀 하루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 입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컴으로 옮겨 놓고 보니 어꺼저께 산행때 찍었던 날아간 사진이 함께 옮겨져 있네요
    그래서 사진만 꼬박 이틀을 만진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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