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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는 강원 제2의 군인도시 정도로 알고 있고 나하고 전혀 관계 없는 도시 인줄 알았는데
군시절 장비수령차 한번 스쳐지나간 인연은 진부에 살던 동서댁이 조카 교육 문제로 원주로
이사를 하므로 간간히 방문하는 도시가 되였습니다
▼ 2005년 11월 경 등산차 남대봉을 오르면서 치악(雉樂) 의 전설 얽혀 있는 상원사를 본적이 있고
다 알고 있는 전설이지만 여기에서 한번 소개 해 봅니다 (사진 상원사 일주문과 상원사 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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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봉을 오르면서 본 머리바위
▷ 꿩의 전설 ◁
원주 치악산에 한 절이 있어 하루는
불존(佛尊) 수좌(首座)가 법당(法堂)
뒤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감싸고 있었고,
구렁이와 꿩이 서로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아, 이렇듯 서로 물고 버티며 놓지
않는 다툼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싸움하는 사이에 어부지리(漁父之利)
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불존 수좌가 지팡이로 구렁이를 풀어
꿩을 구하니, 이날 이경(二更 밤10시
경)에 하얀 형상을 한 노인이 와서
전등(剪燈)의 왼쪽에 앉아 쇠붙이가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말하기
를, "나는 이내 이 절의 종을 주조하는
화주승(化主僧)이다.
사방에서시주를 모아 자선(慈善)을
베풀고자 이 큰 종을 주조하였으나
종소리가 맑지 못하여 도리어 죄업
(罪業)에 대한 응보(應報)를 받았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구렁이의 뜻이
었고,
지금에는 재앙과 액운이 헤아릴 수
없다.
오늘 다행히 꿩 한 마리를 얻어 점심
으로 먹으려 하였다.
그대의 자비로 이와 같이 한번
굶주렸으니 반드시 그대를 대신으로
먹어야겠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를 위해 종을 쳐서
소리를 내면 이러한 추한 응보를
면할 것이니, 이것 또한 자비이다."
하고 말이 끝나자 홀연히 떠나갔다.
의심스러워 괴상하게 여기는 사이에
앞에 있는 울리지 않던 종이 천천히
하늘 밖으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두운 속에서 한 쌍의 꿩을 보니
부리를 사용하여 종을 울렸다.
한 번은 소리가 크고 한 번은 소리가
작아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마디가
있었고 한 번은 암컷의 소리였고
한 번은 수컷의 소리여서 암컷과
수컷의 차례가 있었다.
일종(一宗)이 죽고 일종(一宗)이
살았으니 죽고 사는 것에는 표지
(標識)가 있으며 이것이 불문
(佛門)에서 예악(禮樂)을 짓는
법이다.
동틀 무렵에 노인이 다시 와서
말하기를,
"나는 종이 울리는 힘을 입어
얽어 맸던 몸에서 벗어나 승천한다.
"고 하였다.
해가 솟아 밝아올 무렵에 가서 보니
금구렁이 한 마리가 남쪽 처마 아래
에 죽어 있으므로 승(僧)이 죽었을
때의 예와 같이 장사지냈다.
아, 꿩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목숨을 구해준 승(僧)의 은혜를
보답했고 승(僧)은 꿩의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는
보답을 받았다. 구렁이는 승(僧)으로
인하여 생명을 아껴 꿩을 살려
주었고, 꿩으로 인하여 쌓였던
억겁(億劫)의 고통을 벗었으니
이것이 일거삼득(一擧三得)이다.
사물은 비록 같지 않았으니 세상에서
뛰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치악(雉樂)
으로써 그 산의 이름으로 하고 종을
쳤던 소리로써 온 나라의 사찰에
퍼졌다고 한다.
(자웅종기에는 雉岳이 雉樂으로
되어 있음.)
- 해남 대흥사에서 1921년 발간한
「범해선사 문집」중의 '자웅종기
(雌雄鐘記)'
- 『원주얼 9호』에서 발췌 | |
▼ 김장도 돕고 겸사해서 원주 동서댁으로 갑니다 처재는 성격이 깔끔한가 베란다에 키우는 꽃도 잘
가꾸어 놓고 거실도 잘 꾸며 놓았네요 같은 자매인데 ... 알고보니 남자할 탓이라고 해서 할말이 쑥
덜어 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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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도 혁신도시로 지정되어 그 공사가 시청이 있는 무실동과 버스 터미널이 있는 단계동 등에
시설이 되는 모양입니다 아파트도 새로 많이 건설되고 시가 구획도 반듯하게 잘 되여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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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시청사 입니다 잘 지웠습니다 이런것 보면 우리나라 부자 나라 입니다
원주시는 건강도시, 안전도시, Clean & Green City, 혁신도시, 기업도시 를
시정목표로 하여 힘찬 재 도약을 하는 도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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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간을 이용하여 짧은 시간에 둘려 볼것이 있나 컴으로 검색해 봅니다 강원감영터 와 박경리
문학공원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네비게이션을 맞추어 무작정 찾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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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감영의 설치와 이전
(註) 조선시대 (1395년)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고 강릉의 '강'자와
원주의 '원'자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였고, 원주에 강원감영이 설치되어 이때부터 강원도의 수부
로서 행정 ·치안·사회·문화 등의 중심지로 가 되였다가
1895년 5월 26일자로 전국이 23부 337군 제도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충주부에 소속되었고,
1896년 8월 4일자로 팔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여 전국을 13도 1목 7부 331군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으나, 원주에 있던 강원도 감영은 원주에 회복되지 못하고 춘천으로 이전하게 됨 | |
▼ 감영의 첫 대문 위에 누각이 있어 포정루라 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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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랑채인가? 밖같쪽과 안쪽 현재는 관리사무소로 쓰고 여기로 출입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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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정루의 첫대문을 덜어서면 대문이 또 하나 있는대 중삼문이다 중삼문을 덜어서서 조금지나
직각으로 틀어 덜어가면 내삼문이 나온다 옛 감영은 삼문을 지나야 감사를 만날수 있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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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영의 정사를 보던 선화당 뒷쪽 마당과 고목 내당과 행량채
감영터를 일부러 보러 올 필요는 없고 지나는 길에 한번 들려 보는 정도 그나마 시간이 없어면
여기 그림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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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영지를 나와 쭉 갑니다 박경리 문학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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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문학공원 배치도
조성배경
원주시 단구동 일원에 단관택지를
조성하면서 자칫하면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질 뻔했던 대하소설"토지"
의 산실 박경리 선생의 옛집과 주변
문화환경의 가치를 감안하여 원형을
보존한 문학태마공원으로 조성
공원조성
소설 "토지"의 배경과 이미지를 재현
코자 옛집을 중심으로 섬진강을 연상
시키는 개울과 백사장 뚝길이 있는
"평사리마당", 간도 용정의 이미지를
살린"용두레벌", 어린 홍이를 태마로
한 "홍이동산" 등 3개의 주재 공간
으로 조성
개요
면적 10,458 평방미터 (3169평)
완공일 1999년 5월 31일
시행자 한국토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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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그런 건물이 공원 관리 사무소 관리사무소의 앞쪽과 뒷쪽
건물2층 전시실에 설치된 소설 토지의 관련자료을 살펴볼수 있고 공원을 둘러볼 Pamphlet
(팸플릿)을 얻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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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사리 마당
소설 토지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고향 평사리의 들녘이 연상되도록 섬진강 선착장 뚝길 등이
아담하게 조성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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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이 동산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 놀수 있는 동산이라는 의미로서 토지 속의 대표적 아이 주인공인 홍이
에서 따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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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이 동산에서 길을 따라 조금 내려 가면 용두레 벌을 테마로 한 공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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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 속의 이국 땅인 간도 용정의 이름을 넣은 용두레 우물과 간도의 벌판에서 연유한 이름이며
일송정, 용두레 우물, 돌무덤 풍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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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선생 옛집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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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리 선생 동상 평소 즐겨 앉던 바위에 고양이와 새와 더불어 쉬던 모습 그리고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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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을 나오는데 원주를 안내하는
관광지도 게시판이 있어 찍어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주차 금지 구역임에도 주차된
차량의 방해로 사진을 찍 을 수가
없군요 원주시민이라면 욕 먹이는
짓 입니다
지리를 좀더 안다면 관광을 더
즐길수 있는데 다음을 기약하고
원주를 떠날 시간이 되였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치악산쪽
으로 가보고 싶군요 그리고
책과 담을 쌓은지 오래라 들면
잠이 오지 않을려나 모르지만
"토지"를 한번 읽어 보아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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