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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칼국수와 육개장 그리고 목척교



◀ 아주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어린시절을 고향에서 크고 어른이 되면 근처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잡아 살았고 특별하게 과거에 급제하여 임지로 부임하면 고향을 떠나 세상에 나가는(출세) 외에는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피치 못하게 타향으로 떠도는 사람을 역마살이 끼어 팔자가 드세 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가업을 이어 고향을 지키는 사람은 많치 않고 대부분 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정을 키워 고향으로 만들며 살아 갑니다 직장따라 대전으로 와서 어언 반평생 강산도 변하는 세월의 강을 건너 왔군요 낮설고 어설푸기만 했던 그 시절로 돌아 가 봅니다 대전역 3층 근무지 치고는 좀 독특 하다 넓은 광장에는 온갖 행사, 데모,시위,유세, 공연, 별의별 광경을 다 볼수 있어 전망대 같은곳. 아침이면 새마을 조기청소 눈이 내리면 제설작업 유리창 딱기 등 볼거리에 비례하여 관리할 꺼리도 많았군요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것 같습니다 그 많은 추억중에도 먹거리에 대한 추억를 빼 놓을수 없겠지요
     
   ▼ 1980년대 대전의 번화가는 대전역에서 도청까지에 걸처있는 대흥동, 은행동, 선화동, 정동,중동 등 이 였으며 
    고급요정과 식당이 여기 다 몰려 있었다  외지 분들이 대전의 대중식당을 이야기 하면 다들 한밭식당의 설렁탕, 
    곰탕을 이야기한다 지리적으로 역에서 가깝고 찾기가 쉬워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 모양이다  
    서울식 설렁탕 그대로 조리하는 정통의 맛이 있다  그 외에도 도가니탕 이라면 전주식당 복어집이라면 서울복집 
    등 맛집이 여러곳 있었다  그중에서도 추억에 남아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육개장과 칼국수  

 
 ▶ 1977년경 한밭식당 바로 옆에 명랑식당이
   있었고 선배직원들의 안내로 육개장과 파전
   을 맛 보았는데 환상의 맛이 였습니다 
   찢어넣은 고기는 살살 녹고 진한 국물과 
   굵은 대파의 미끄르운 맛은 조미료 없이
   끓인 자연의 그 맛이 였습니다 
   파에 계란으로 피복하여 각종 해물을
   언저 붙쳐내는 파전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
   파전 그 자체 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명랑식당은 자리를 옮겨
   하마장여관 앞으로 이전하여 영업은 계
   속하였으나 육개장 맛은 그때의 감동 맛은 
   아니였으나  잘 끓어내는 육개장집으로 
   소문이 날 정도이고 우리들도 종종 찾는
   집 중에 하나 였습니다  한 십년쯤 지난후
   어느날 명량식당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다른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후 명랑식당의 육개장 맛을 따라 내는 
   식당이 있어 아쉬운대로 이용하며 명랑
   식당은 뇌리에서 사라진다 

     
   ▼ 작년인가 친구로 부터 삼성동 골목길에 오후3시 까지 밖에 영업을 안하는 맛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봅니다 삼성초등학교 아래쪽 담배인삼공사 옆길로 덜어가서 삼성동 구세군 교회 바로 앞에 식당이 
    있군요 낮익은 글짜 명랑식당이 였습니다 그동안 맛집으로 방송에도 소개 되였군요 육개장 한 그룻 먹어
    봅니다  옛 맛 그대로 군요  

     
   ▼ 박봉에 밥만 먹을수는 없고 싸고 배부른 국수집으로 갑니다  중동 거시기 골목의 신도칼국수 
    대전에 와서 처음 갈때는 허룸한 옛날집 방이 없으면 흙바닥 부엌에서 먹고 손님은 항시 만원 종업원은 
    순서를 정확하게 지켜 늦게 온사람이 일찍 먹는 경우는 한건도 볼수 없는 철저한 순서지킴으로 유명한집
    그때의 국수값이 300원 정도 하였나?  국수그룻은 큰 양푼이 많이 먹을때 이니까 그땐 배심으로 버티였으니 
    몇년이 지났나  돈 벌어 새집을 짖고 할머니와 딸이 주방을 사위가 계산을 보고 성업중이 였는데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가 있고 딸과 사위를 제치고 아들이 신도 칼국수를 이어 받고 딸은 바로 옆 50년 전통
    국수집을 만들어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였고 우리들도 맛이 좋은 딸 집으로 많이 가곤 했습니다 
    (신도칼국수집은 1961년 개업을 하였나 봅니다  돌출 간판에 숫자가 개업년도 같군요)

 
   ▼ 어느날 중동 골목에서 조금나와 역에서 가까운 곳에 주방장 칼국수란 간판을 걸고 신도칼국수와 같은 국수집이 
     문을 열고. 알고보니 신도에서 주방일을 돕던 아주머니가 음식을 배워 식당을 차린 모양이다  우리들은 굳이 골목
     까지 가기 보다 가까운 곳에서 같은 맛을 내는 곳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이후 주방장 칼국수는 행복식당으로 
     간판을 바꾼다 여기에는 나이 많은 분들이 옛날 신도의 맛에 졎어 있는 분들이 많이들 찾고 있다   

 
  ◀ 신도 칼국수는 사골국물을 이용한 
    것으로 옛날 우리시골에서 국수를 해 
    먹던 그 방식 그대로 인것 같다 
    量은 지금 사진에서 보는 그룻의 배는 
    큰 그룻이 였고 반찬으로는 다꾸앙과 
    열무김치가 전부이고 간장은 풋고추를 
    넣어 만든 옛방식의 양념 
    물은 찬물 한 컵이 전부 
    지금은 조금 현대식으로 바꾸어 量도 
    먹을 만큼의 그릇과 반찬으로 김치도 
    가미되고 또 여럿이 간단한 회식차 
    가면 술과 돼지고기 수육을 추가 하면 
    값싸고 한끼 좋은 먹을거리가 된다 
    칼국수만 전문으로 하던때는 옛 방식
    오징어 두부두루치기도, 콩국수도 
    하는 군요 
    칼국수 맛이 괜찬다고 유명인의 
    싸인도 붙여 놓았군요 
     
    ▼ 세상은 좋게 좋게 변해 가는데... 사람은 날로 날로 늙어만 갑니다  
     대전역이 변해 가는 모습들 입니다  2000년대 와서는 나와 오랜시간 같이 했던 건물은 온데 간데 없군요

     
    ▼ 좋게 좋게 변해 가는 곳이 또 한곳 있다 대전의 상징인 목척교 
      가로등 희미한 목척교에 기대서서... 운치 어리여 있는 나무다리 목척교는 교통량이 많아지고 도시화로 크게 
      만들어야 하고 칙칙한 회색빛으로 변해 갑니다 

     
   ▼ 산업화와 도시화의 변화로 경제론리가 앞서던 시절  다리 위,아래로 복개되고 중앙데파트 홍명상가 건물이 
     건축되어 대전천은 하수화 되어 간다  

     
   ▼ 서울 청계천의 변화로 생태 하천이 대세가 되고 경제론리 보다 환경론리가 앞서는 시대에 맞추어 목척교의 
     위,아래 건축물들은 철거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였군요   그 과정을 화면으로 담아 놓았습니다 

     
   ▼ 건물과 하천을 덮고 있던 콘크리트가 철거되고 다리는 버섯을 상징하는 난간을 만들어 다시 태어 납니다  
     개통식때 대전시장은 목척교와 대전천이 과거 개발지향 사회에 잃었던 본래 모습을 복원공사를 통해 보고 
     휴식하기 좋게 새롭게 복원되였다고  말 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공사 중인 사진 아래 사진은 완공된 목척교 모습)
      

 

     
   ▼ 목척교에서 상류쪽(중교다리 넘어 까지) 으로 주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분수, 연못, 갈대밭,제방을 따라   
     목재 데크 등 잘 꾸며 놓았네요  
      

     
   ▼ 목척교와 하류쪽에서 본 목척교   하류쪽 대전천 모습 하류쪽은  별 시설 없이 산책로와 하천수로만 
     정비 하였군요  
      

     
   ▼ 목척교와 주변 시설은 밤이 더 아름답습니다   
     목척교 주변복원공사는 지난 2003년부터 학술연구가 시작돼 2008년 '3대하천 생태복원조성 기본계획' 확정을 
     거쳐 지난해 7월 착공  완공까지 176억원의 사업비가 들었고 시는 앞으로 목척교의 조명을 오후 8시부터 자정
     까지 밝히고 음악분수는 하루에 40분씩 4차례 가동하는 등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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