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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지리산 이야기 (2편) 성삼재에서 연하천까지


     
          ♡ 지리산 종주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의 주능선 산행을 말하며  
   지리산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의
   주능선은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칠선봉, 촛대봉, 천왕봉 등 1천5백m 이상의
   16개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이 주능선 산행을 지리산 종주라 한다
   지리산 종주는 일반적으로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주능선을 타고 천왕봉에서 
   대원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종주코스라 한다. 
   성삼재 도로포장 이후 지금은 성삼재까지는 차로 갈 수 있고 성삼재에서 산행에 
   들어가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다. 
   그러나 등정코스는 노고단을 먼저 오르지 않고 역코스로 종주하기도 하고. 
   천왕봉에서 하산도 대원사 코스만을 고집하지 않고 중산리, 백무동 등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등정과 하산코스는 개의치 않고, 노고단에서 천왕봉, 또는 천왕봉에서 
   노고단 까지 주능선을 산행하는 것을 지리산 종주라고 하며. 
   아직까지도 산꾼들은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대원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고집하기도 한다.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만 25.5km에 식사시간을 포함하면 
   18시간 정도 소요된다. 등정과 하산을 어느 코스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나 
   등정과 하산을 합하면 약 40-50km에 22-25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리산 종주코스는 우리나라 산의 종주코스 중 가장 긴 코스이다. 
   한두번 산에 다니다 보면 산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종주산행을 하게 된다. 
   종주산행 중 가장 길고 자신과 인내의 싸움이 필요한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 
   가히 산꾼이라 할 만하다
 
 
    지리산 종주산행 소감 Ⅰ
  
  산에 오르기 100산을 훌쩍넘기고 지리산종주 만을 남겨놓은 산 프로,계룡산은 안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누비고 다진 계룡산 산꾼, 친구가 말하면 어지간해서는 거절못하는 성격의 세 친구가 
 년초 만남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나온 말의 씨가 오늘날 지리산 종주 이야기를 소개하는 
 결과로 귀착 되었습니다 
 지금 이나이에 무리라는 일부 의견이 많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 망설
 이지 않을 수 없었으나 지난번 소개한 피아골 화엄골에서 어느정도 자신감을 얻었다고 다들 
 생각했다. 우여곡절이 많고 숨은 사연도 많았으니 종주한 각자의 소감도 다를수 밖에 없을 것인 
 바, 종주자체에 의미를 두고 염원하던 등산프로의 지리산종주 소감을 먼저 듣어 본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 오르고 생판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 그래서 불가능의 
 창고에 집어 넣고 닫아버렸던 그 지리산 종주를 드디어 해 냈다. 그래서 "불가능은
 없다" "꿈은 이루어진다"  했던가?  그것도 1박 2일로 종주를 성공했으니 실로 
 나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1승에 목말라 하든 한국 축구가 단숨에
 4강까지 오른 격이다.
 그동안 많은 종주에 대한 경험담도 많이 듣고, 자료 또한 책이 한 권은 될 만큼 수집
 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 하였으나 도무지 해결되지 않은 배낭의 무게를, 안되면 가다가 
 버릴 생각까지 하여 감행한 종주가 실제로 해 보니 제일 문제는 문제였다. 결국 올림픽 
 역도 선수의 3차시기에 해당하는 무게의 배낭을 메고 어렵게 해냈지만 이 문제도 이번 
 종주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았으니 다음 번 종주는 훨씬 더 가볍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지리산을 20번 갔다온 사람은 지리산을 이렇쿵 
 저러쿵 하지만 200번 갔다온 사람은 오히려 입을 다문다는 데 이제 겨우 1번 갔다 
 오고서 지리산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 "보았노라"고 그리고 "느꼈노라"고 부르짖고 싶다. 연하천 
 산장에서의 밤에 나는 이 땅이 만들어지고 하늘이 열렸을 때와 같은 은하수를 보았고
 실로 오랜만에 별똥별의 긴 꼬리도 잡아 보았다. 
 또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던 때의 촉촉한 안개가 온 지면을 적시는 모습을 보았고 
 짙푸른 청정 음이온의 세계, 쥬라기 공원을 보았다.
 탐욕에 찌든 육체의 덩어리가 음이온으로 말끔히 청소되고 죽었던 세포가 
 되살아나면서 놀랄만한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힘의 원천 
 에너지의 시발점이 바로 이 자연이다.!
 육체의 생명인 물, 그리고 영혼을 말게 하는 공기, 생명을 싹틔우고 자라게 하는 흙,  
 이 힘이 아니었든 들 평소 6시간 이상을 소화시키지 못한 내가 23시간의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이제 그 어렵게만 느꼈던 종주를 해 보고 많은 노하우가 생겼으니 2차, 3차에 걸친 
 종주 계획도  세워 보고 그래서 20번이 될 때 지리산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을 
 해 보아야겠다."

 참으로 공감이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컴컴한 연하천의 밤은 나에겐 그냥 갑갑한 암흑이였는데...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던 때의 청정한 음이온 세계를 그려낸 아직도 소년같은 영혼이 묻어있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다     
           
  
   ▼  새벽3시반 핸드폰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프로도 아마 밤잠을 설친모양이다 어린시절 수학여행가는 
     전날밤 처럼 설레임이었을까? 부랴부랴 행장을 수습하고 집을 나가니 벌써 와 기다린다 서대전 톨 게이트
     에서 산꾼을 만나 우린 새벽를 가르며 대진고속도로를 달려 종주산행의 출발지 성삼재에 8:00 에 당도 한다 
     노고운해라더니 성삼재에서도 청명한 아침날씨에 운해가 우릴 반기듯 곱게 깔려있다 
  
   ※ 성삼재---삼한 시대에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 유곡으로 찾아들어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할 때,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 동쪽은 황 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영재,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여으므로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차가 다닐수 있게 잘 닦여진 임도이다.  대장정출발
     코재쯤 올랐나 멀리 노고단의 송신탑이 보인다 

     
   ▼ 코재 전망대에서 조망한다 지난번 지루하게 내려갔던 화엄골이 그림처럼 보인다 
     구름은 구례 마산면 일대를 덥고 있어 한층 조망이 좋다.

     
   ▼ 노고단 대피소. 여기에는 햇반, 라면을 팔지 않는다 여기서 숙박하려면 먹을거리
     를 준비하여야 하며 과자류는 있고 물은 취사장 수도에서 쓸 수 있다  

     
   ▼ 노고단으로 가는 임도로 가지 않고 여기서 바로 산길로 간다  대피소에서 노고단
     고개까지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뭔 짐을 많이 가지고 가나 벌써 발이 무거워 보인다  


  
   ▼ 진짜 노고단(1567m)..  정상은 '휴식년'이 풀리는 내년쯤 밟아볼 수 있을까?
     국립공원 관리초소 바로 옆문으로 종주 산행길이 있다  피아골에서 왔을때는 
     저문으로  덜어 왔는데 오늘은 저문을 통과 천왕봉으로 간다 

 
    노고단 해설
  
   천왕봉과 더불어 노고단은 우리민족의 영원한 믿음의 성지로 전해져 오고 있다. 동서로 1백리라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솟아 있으면서 지리산이란 큰 궤를 같이하며 우리 민중의 추앙을 받아온 민족신앙의 영지로 
  남아있는 이들 두 봉우리. 노고단은 높이면에서는 해발 1,507m로 천왕봉의 그것과 비교해 다소 큰 차이를 
  보이지만 역사 이래로 우리 민중에게 부여해온 의미는 천왕봉에 비해 결코 뒤짐이 없다. 
  일명 고선봉으로 불리는 노고단은 서남방향으로 17∼18도의 완만한 경사지대로 대략 35만평 규모의 고원
  지대다. 이 곳은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사는 선도성모의 사당인 남악사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노고단에 화엄사 앞으로 옮겨져와 구례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약수제와 함께 
  산신제를 올리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악사의 유래는 "삼국사기" 제사 부분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삼산과 오악 이하의 명산대천에 대사 중사 소사의 제사를 나누어 지냈는데 중사를 지내는 오악은 동쪽 
  토함산, 남쪽 지리산, 서쪽 계룡산, 북쪽 태백산, 중앙부악(부악·지금의 팔공산)이었다' 고 적혀 있어 
  지리산에서 남악으로 정해져 제사를 올리던 명산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신라시대 이래로 우리민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해온 노고단은 또한 화랑의 심신수련장으로 널리 활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멀리 세석고원까지 오가며 심신을 수련하던 화랑의 드높은 기상이 아직도 노고단 
  언저리에 남아 있는듯 하다. 우리 민족의 안식처이며, 기개를 단련하던 노고단은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수난의 아픔을 겪는다. 
  민족신앙의 성지이며, 낙원이던 이 곳이 일제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서용 별장으로 둔갑한 것이다.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맑은 물이 샘솟아 내를 이루며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이곳에는 당시 외국인 별장이
  52동이나 들어섰다 한다. 더욱이 구례지방에서 조선인 인부들은 벽안의 선교사들을 가마에 태워 이곳 
  별장까지 오르내렸다 하니 당시의 서글픈 시대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노고단 외국인 별장은 그후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발발하면서 반란군들의 근거지로 이용됐다가 국군 
  토벌대에 의해 점령됐으나 이후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두 불태워져 지금은 옛 건물의 
  흔적과 잔해만 남아 아팠던 근대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 건물이 불태워지면서 당시 노고단 
  일원의 울창한 수목들도 때아닌 화마에 휩싸여 지금도 노고단 일대는 큰 수목은 좀체 보이지 않고 싸리등 
  관목류만 남아있다. 노고단은 잘 알려진 비경의 운해 이외에도 숱한 명승지를 같이하고 있으며, 탁트인 
  시계로 멀리 무등산을 확연히 볼 수 있는가 하면 다도해의 장관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다. 
  예부터 노고단 주변에는 종석대, 만복대, 집선대, 문수대, 청련대등 명승지가 산재해 있다고 전해져 오는데 
  주위에 크고 작은 바위군들이 찾는 이를 감탄케 한다. 지금은 노고단 턱밑까지 도로가 뚫려 연간 찾는이가 
  수십만을 헤아리고 있으나 모두들 이들 명승지를 미쳐 보기도 전에 다도해에서 실려온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면서 운해만리 구름바다 를 이루다 다시 점점이 흩어지는 비경에 홀리고 만다. 겨울철에는 백설이
  천하를 감싸안은 풍광을 연출해내 또다른 노고단의 모습을 선사한다. 화엄사 경내에 들어서기에 앞서 고개를 
  들어 노고단을 향하면 상록수 위로 은가루를 뿌린듯 덮여 있는 노고정상의 설경은 노고단의 진면목을 새삼 
  실감케 해준다. 햐얀 겨울속의 노고단 진풍경은 이듬해 봄 늦게까지 계속된다. 
  고원지대의 겨울은 좀체로 떠나려 하지 않으면서 새 봄 진달래가 움틀 무렵 끝났다 싶으며 아쉬운듯 다시 눈과 
  함께 왔다가 햇살에 밀려 허물어 진다. 5월이 되면 철쭉이 고원을 분홍으로 물들이면서 앞다투어 며느리 밥풀꽃
  과 원추리꽃들이 고원의 화원을 이룬다. 원추리 꽃은 특히 고원 전체를 황금빛으로 만들어 놓는 재주를 부려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원추리 꽃의 국내 최대 군락지로 알려진 노고단의 꽃향연 7∼8월이 절정이다. 
  고원의 광활한 화원에서 펼쳐진 최대의 꽃 향연이 끝날무렵이면 노고단에는 어김없이 많은 비가 내린다. 
  평지 보다 두배 정도의 강우량을 보이는 특이한 기후를 가진 노고단은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속에서도 찾는 
  이를 매료시킨다. 고원 특유의 향취가 풍기는 늦여름, 안개 비가 되어 내리다가도 금새 세찬 빗줄기로 변하는 
  고원의 정취를 즐기며 노고단을 걸어봐야 노고단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알수 있을 것이다. 
  한여름 꽃 잔치가 비와 함께 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노고단에는 만산홍엽이 찾아들어 가을인가 싶으면 이내 
  백설을 동반한 겨울이 시작된다. 고원의 사계절은 천하절경을 끊임없이 빚어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원의 정취는 그러나 지금은 턱 아래까지 이어진 도로로 쉽게 우리에게 모습을 내보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걷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는다. 화엄사에서 숨을 헐떡이며 10km를 걸어야 노고단은 제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 이제는 성삼재까지 관광버스가 올라올 정도니 노고단도 예전의 노고단이 아닌듯 하다. 여기서 이미 지난 
  88년 5월에 개통된 이 도로의 개설문제를 논할 것은 못되지만 지리산의 개발에 대한 보다 절제되고 합리적인 
  숙의의 필요성을 새삼 인식해 볼 문제다. 성삼재 관광도로를 통해 들어온 차량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는 매년
  수십만을 헤아린다. 도로뿐 만 아니라 노고단을 향하는 10리길 등산로도 체증을 빚을 정도이다. 화엄사에서 
  코재를 거쳐 10km를 올라오던 성삼재에서 차를 내려 10리를 산보해오던 노고단은 이제 쉽게 만날 수 있다. 
  노고단에는 새로 단장된 노고산장이 먼저 길손을 반기고 있는데 정상을 향하다보면 외국인 별장의 잔해와 
  방속국송신탑을 언짢아도 봐야 한다. 정상에 서면 여성 둔부처럼 보이는 반야봉이 눈앞에 보이며 1백리 멀리
  떨어져 있는 천왕봉이 아스라히 모습을 비친다. 남쪽으로는 지리산의 또다른 매력으로 일컬어지는 왕시루봉 
  능선과 문수리계곡,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가 확연하다. 손에 잡힐듯 뻗어 있는 만복대 능선도 노고단 정상에서 
  보면 절경이다. 한민족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전해져 오고 있는가하면 외국인 선교사들이 보기 흉한 잔해들과 
  함께 동족상잔의 아픔을 빚은 흔적들이 그대로 상존해 있는 노고단. 태고적부터 영겁의 세월을 보내오면서 
  고스란히 대자연을 물려받은 우리가 오늘날 조금씩 조금씩 대자연을 갉아 먹어 가고 있음을 노고단에서 새삼
  느낄 수 있다. 
           

  
   ▼ 산 허리 숲길로 지리산 종주를 시작한다
     지난번 산행시 돼지령을 확인하지 못하여 찾아본다고..  긴가 민가하네.. 


  
   ▼ 돼지령 여기서 많이들 쉰다 아무튼 한숨돌리고 물 한모금 마시고 가자!   
      돼지령에서 문바우등, 왕시리봉 쪽의 골짜기  


  
   ▼ 지난번에 왔던 피아골 삼거리 여기서 피아골로 내려갈수 있고.  임결령 샘터
     여기까지는 지난 산행으로 눈에 익고 비교적 쉬운코스.. 이제부터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로... 


  
   ※ 임걸령(林傑嶺:1,320M)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KM거리 능선상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령(高嶺)인데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주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니 녹림(綠林) 속에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터에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에 녹림호걸(綠林豪傑)들의 은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의적(義賊)두목인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샘터에서 피아골쪽 암벽밑에 막(幕)터가 있으니 이곳을 '황(黃) 호랑이 막(幕)터,라 부르며 옛날에 약초꾼 황(黃) 
     장사가 눈이 내리던 겨울밤에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자다가 지혜와 용기로 큰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는 4KM의 거리이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임걸령 샘터에서 노루목까지는 만만치 않은 오르막이 반복되는 코스로 배낭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등정이다. 빨리 짐 일부를 뱃속에 넣고 가야 할 터인데...   


  
   ▼ 임걸령에서 반야봉을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 능선길을 한동안 숨가쁘게 오르다 보면 평지가 나오고 계속 능선길을 
     가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약 2KM지점에 작은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을 노루목 삼거리라 부른다. 
     노루목은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천연의 암두(岩頭) 전망대에서 눈 밑에 펼쳐지는 피아골 원시림 계곡을 내려다 보노라면 
     원시림 속의 정적에서 풍겨 나오는 유적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가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노루목 종주하는 사람들이 배낭을 놓아두고 반야봉을 들렸다 다시와서 배낭을 가지고 
     종주를 계속한다는 말이 있다  놓아둔 베낭도 보이고 등산인들도 많이 쉰다  


  
   ▼ 우리는 조금더 올라가서 반야봉에서 노고단과 뱀사골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배낭을 놓고 
     반야봉으로 향했다.  아 점심도 이 곳에서 먹었군..   반야봉 가는 길    


  
   ▼ 반야봉은 철계단도 오르고 돌계단도 올라야 한다  

  
  ▼ 여기가 반야봉 높이 1,732m.
   반야봉(般若峰)은 지리산 
   제2봉으로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여 반야낙조(般若落照)는 
   지리십경의 하나로 꼽힌다 
   화강편마암으로 급경사의 바위산을 
   이루어 산세가 비교적 험하다. 
   남사면에서는 섬진강의 지류가
   발원하며, 북사면에서는 산내천이
   발원해 남강으로 흘러든다. 
   반야봉 표지석에서 산 프로와     
   

  
  ▼ 표지석과 반야봉의 돌탑 북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은 만복대에서 뻗어내려 고리봉,세걸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 西로는(온길을 바라보면)  성삼재휴게소와 19번 도로도 하얗게 보인다 
    180도 돌아서 東으로는 구름에 쌓여있는 천왕봉이 보이고  
    남으로는 음... 남쪽사진은 없군 남서쪽으로 멀리 노고단의 안데나 가 보인다 


  
  ▼ 반야봉을 내려와서 다시 
   노루목으로 가지 않고 삼거리
   에서 뱀사골 대피소 가는 길로
   빠져 삼도봉쪽으로 간다 
   지리산 주 능선으로 나오면 
   제일 먼저 삼도봉이다
   (일명날라리봉)
   삼도봉 표지는 동으로 만든 
   삼각형 지주로 되어 있고 
   3 면에 해당되는 道 명칭이
   각인되어 있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 삼도봉(三道峯)은 해발 1,533m의 봉우리로 3개 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삼도봉으로 불리며
    반야봉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외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반야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 
    볼 수 있어 좋은 경관을 제공하고 또 주의에는 두꺼비 바위가 있다      


  
  ▼ 삼도봉 벼랑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불무장등과 능선을 배경으로 폼 한번 잡았다

  
  ▼ 삼도봉에서의 조망 동쪽으로 촛대봉에서 연하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릉을 조망할 수 있으며, 
   동남쪽으로 남부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 삼도봉을 떠나 오늘 목표 연하천을 향하여 부지런히 간다  삼도봉을 조금지난 등산길은 나무계단 길이다 
     545계단 이라 는데 헤아려 본 사람들 참 할일 없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지리산 곳곳에 이런 시설물이 
     많이 있다

  
  ▼ 화개재는 옛 하동(범왕 연동골)
    과 남원(뱀사골)의 물물교역 통로의
    중간지점으로 많은 이들의 이동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지리산 종주능선의 초입부분
    으로 많은 사람이 머물었던 곳이다. 
    현재는 물물교환을 위해 화개재를 
    넘나드는 이는 없지만, 과거 수년전
    까지 무분별한 야영으로 나지가 확산
    되는 등 훼손이 있어왔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는 식생복구공법
    으로 화개재의 식생을 복구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 나지(裸地)가 어지간히 복구되어 가는 모습이다  말목으로 출입금지의 지역을 구획하고 
    사람들이 필히 통행 하여야 할곳은 나무계단을 만들어 통행시키고 있다   


  
  ▼ 화개재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
     
   ▼ 무지 막지 걸었는데 아직도 토끼봉 명선봉 가마득하네 ...
     토끼봉(높이1533m) 이정표가 나오고 ...  토끼봉이란 명칭은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 중 정동
     (正東)에 해당되는 묘방이라해서 토끼봉으로 부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정상 초원에 지보초(식용산채류)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 토끼봉 이정표가 분명 여기 있었는데 峯이 아니고 그냥 평지 여기도 식생복구를 위해 금줄을 쳐 놓은 것이 
    과거 야영지로 사람이 무지 붐비던 곳이란 것을 반증하니 토끼봉 이거나 근처인것 같은데...  
    조금 높은데 토끼 형상바위가 있고 정상 정복의 대리 만족이라도 할양인가 바위 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 토끼봉에서 명선봉을 
    팔부능선으로 넘어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으로 
    멀고도 지루하다   
    명선봉(높이 1586.3m)
    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일대의 울창한 수림은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어 여순반란 사건과 
    한국전쟁 당시 은신처
    였다고 한다 
    그런데 종주산행길은 
    명선봉은 정상을 거치지
    않고 왼편 산허리 길을 
    길게 돌아 간다. 
    오르막 중간에 총각샘이
    있으나 길에서 떨어져 
    있고, 아무 표시가 없어 
    그냥 지나 치게 되고 
    연하천은 명선봉 기슭에 
    있다 
   

  
  ▼ 이 계단을 넘어가면 연하천이다 

  
  ▼ 연하천은 명선봉의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다하여 연하천(烟霞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드디어 연하천 산장에 도착.  먼저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오른쪽 별채가 취사장이다. 곧바로 예약된 자리를 배정
    받고(2층 사다리에서 멀다) 보니 참 기가 막힌다. 10평정도 될까? 가운데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침상이 있는데 
    이층으로 되어있다. 군대막사와 다른점은 이층이랄까 그외는 같고  하나 틀린것은 남여 공용이다.  
    이층은 침상끝 못에 소지품을 걸게 되어있고 침상이 조금 짧다 롱다리는 곤란. 
     
   ▼ 첫날의 일정으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짐이 무거워  많이 지쳐 있다  연하천 대피소의 샘은 물이 차고 수량도 
     많고 물맛도 괜찮은 듯.. 
     저녁은 햇반과 라면으로 때우고 슬슬 묵을 준비를 한다  연하천 산장에는 라면 소주 과자류를 판매한다

  
  ▼ 굳이 예약이 없어도 이리끼고 
   저리끼고.. 취사장에서 비박하니
   다  해결이 되더군
   한두명이라면 예약이 없다고 
   못올 곳도 아니라는걸 느꼈고 
   잠자리가 선데 젊은 사람들과 
   같이 하니 코고는 소리, 이야기 
   소리, 뿌시럭 소리 도대체 잠을
   잘수가 없었다.
   배낭을 벽에 걸 수가 없어 침상 
   안쪽에 두었더니 발을 뻗칠 수가 
   없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서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아니, 한번 나가면 들어 올수가 
   없으니 꼼짝없이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