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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gpong

No-gluing 시대 대처방안

노-글루잉(No-gluing) 시대 대처방안

“탁구는 용구보다 기술이다!”



일명 ‘스피드글루’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됐다. 그 대안으로 등장했던 보조제들 또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예고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과거의 스피드에 익숙해있던 선수들은 글루잉 금지조치가 당혹스럽다. 변화의 시대, 어떻게 극복해 가야할까. 노-글루잉 시대의 대처방안을 찾아본다.


일명 ‘스피드글루’ 전면 사용금지

  2008년 9월 1일부터 ‘스피드글루’로 통칭되던 탄력 접착제의 사용이 금지됐다. 주니어 이하에 먼저 적용하고 베이징 올림픽 이후부터는 전면적으로 금지하겠다고 천명해왔던 국제탁구연맹(ITTF)이 예고대로 스피드글루의 완전 사용금지를 선언한 것이다. 그에 따라 국내외의 탁구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러버를 떼어내 글루잉을 하고 다시 붙이던 익숙한 모습을 이제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국제연맹은 또한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인 8월 15일, 스피드글루와 더불어 보조제 역시 사용을 금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보조제란 금지된 글루의 대용품으로 개발된 것으로, 스펀지에 바르면 텐션(tension) 효과를 일으키고 그 결과 러버의 탄력을 증가시켜 스피드글루에 가까운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했던 ‘후가공제’들을 말한다.

  그러나 보조제는 VOC 성분이 현재 검사 제한수치인 5ppm을 넘고 안 넘고를 떠나 [공인된 러버를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후가공하여 러버의 성능, 구조, 표면 등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연맹의 규칙에 위배되므로, 이들에 대해서도 ITTF가 정식으로 금지를 천명한 것이다. VOC나 유사성분의 용매제가 포함되지 않고서는 후가공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국제연맹은 이네즈(enez)로 대변되는 VOC 계측용 라켓 검사기계로 스피드글루의 사용여부를 측정하는 한편, 보조제 사용을 막기 위해 4mm를 넘어서는 안 되도록 규정한 러버의 두께를 재는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또한 계속되는 계몽을 통해 선수들이 수용성 글루만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스피드글루를 대신해 보조제 사용을 생각하고 있었던 많은 선수들은 결국 또 하나의 벽을 만난 셈이다.

  그렇다면 국제탁구연맹은 무엇 때문에 스피드글루의 사용을 금지한 것일까. 갑자기 찾아온 노-글루잉 시대를 선수들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현대 탁구의 긴박감 넘치는 스피드화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지만 환각작용까지 불러올 수 있는 유해성 때문에 오래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스피드글루를 좀 더 돌아보자.


스피드글루, 시작부터 금지까지

  현대 탁구는 용구의 발달과 더불어 기술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에 부합하는 용구가 개발되는 상관관계의 요구가 계속해서 진행되어 왔다. 목판이나 코르크판으로 회전 없이 공을 넘기던 단순 랠리의 운동으로 시작됐던 탁구는 특히 블레이드에 부착하는 러버의 등장 이후 매우 빠른 변화를 겪어왔다.

  1950년대 스피드를 증가시키기 위해 10mm의 스펀지를 붙여서 친 적이 있는가 하면 고무로 만들어진 돌출러버의 등장 이후에는 ‘속공’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돌출러버의 시트를 뒤집은 평면러버가 개발된 후에는 마찰을 통한 스핀 계수의 극대화로 회전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 나타났다. 현대 탁구기술의 꽃으로 통하는 드라이브가 바로 평면러버의 등장 이후 시작된 기술이다.

  지금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생활체육 동호인들도 자연스럽게 드라이브에 맞드라이브를 하는 시대가 됐다. 또한 양 핸드의 한 면에는 평면러버를 또 한 면에는 돌출러버를 붙여서 각기 다른 구질을 한 경기 내에 한 선수가 구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탁구의 기술이 최고조에 달할수록 더욱 빠르고 강한 스피드와 스핀에 대한 선수들의 욕구도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용구업체들의 ‘더 빠르고 더 잘 걸리는’ 러버의 연구개발에 사활을 건 생산 경쟁 또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스피드글루는 그와 같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변칙적’ 보조수단이었다. 90년대 중반 무렵 러버와 블레이드를 통한 효과가 일정 부분 한계치에 도달하자 각 용구업체들이 VOC 성분을 첨가한 러버접착제를 개발, 또 다른 효과를 꾀했던 것이다(‘스피드글루’라는 이름은 일본의 용품업체인 TSP의 고유브랜드였지만 ‘스피드’라는 단어의 어감이 강해 그와 같은 탄력접착제들의 대명사가 됐다).

  휘발성 유해물질인 VOC는 러버접착시 스펀지에 스며들어 일시적으로 러버의 반발력을 증가시킴으로써 공의 스피드와 회전을 높이는 효과를 냈고, 더욱 빠르고 강한 구질을 원하던 선수들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됐다. 얼마 전까지 대부분의 경기장에서 모든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때마다 러버를 떼어내고 다시 글루잉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던 것은 휘발 성분인 VOC의 효과가 한시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VOC의 유해성이었다. VOC는 대부분의 접착제에 들어있는 휘발물질로 쉽게 본드를 떠올리면 된다. 빵을 부풀리는 이스트처럼 스펀지의 탄력을 늘려 반발력을 증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시적 효과 때문에 잦은 글루잉이 필요했고, 자주 흡입하면 신체에 이상을 부를 수 있는 유해물질이어서 국제연맹은 이의 사용여부를 놓고 자주 논란을 벌여왔던 것이다. 일본의 40대 남성 생활체육인이 경기장에서 글루잉을 하다가 식물인간이 된 사례가 보고되는 등 스피드글루의 유해성은 탁구계의 오랜 화두였다.

  하지만 국제연맹이 유해함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사용금지를 주저했던 것은 그 효과의 탁월함 때문이었다. 사용이 금지되면 극대화된 스피드로 긴박감 넘치는 승부를 벌이던 탁구의 재미가 반감될 수 있고, 가뜩이나 높지 않은 탁구인기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끊임없이 제기됐다. 실제로 스피드글루는 수용성 글루에 비해 최소 3%에서 최대 7%까지 스피드와 스핀을 증가시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미 높은 스피드와 탄력에 익숙해있던 대부분의 선수들 역시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소강상태를 보이던 논란이 결국 금지하는 쪽으로 정리된 것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개입 움직임이 감지된 까닭이 컸다. 건전한 아마추어리즘을 중시하는 IOC가 많은 사례를 수집하고 종목의 유해성을 직접 거론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국제탁구연맹의 임원들 사이에서는 종목의 위상에 손상을 입기 전에 자정적 노력으로 먼저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으며, 몇 차례의 격렬한 논란이 더 이어진 끝에 스피드글루는 결국 역사 속으로 ‘추방’되는 운명을 맞았다.

  2008년 9월 1일은 현대 탁구의 숨 막히는 스피드 경쟁에 불을 지폈던 ‘스피드글루’가 탁구경기장을 떠난 날짜다.

  정공법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스피드글루 사용금지는 잠시 동안이지만 탁구계에 혼란을 몰고 왔다. 대안은 VOC 성분이 첨가되지 않은 수용성 접착제와 양면테이프뿐이었지만 이전까지의 글루잉 효과에 익숙해있던 선수들로서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은 수용성 글루로 접착한 러버를 억지로 떼어내 다시 붙이는 어색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수용성 글루가 채 마르기 전 수막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공의 경쾌한 소리’로 심리적 위안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각 용품사들이 글루와는 별도의 보조제(또는 후가공제)를 생산한 이유도 그런 필요조건 때문이었다. 유력 용품사들의 주도 하에 생산된 보조제들은 현재까지 VOC 계측기를 통해 지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도 은연중에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연맹이 금지를 천명한 이상 이 같은 보조제들도 결국엔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국제연맹은 보다 정밀한 계측기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유력 용구 제조회사들은 변칙적인 수단보다는 자체적으로 최대한의 텐션을 내장한 러버 개발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선수들 또한 이전까지보다 용구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노-글루잉 시대는 세계 탁구의 판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선수들은 또 한 번 찾아온 변화의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스피드와 스핀의 감소는 긴박감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랠리를 증가시켜 TV중계 등에서는 오히려 흥미를 높이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용구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여 체력으로 맞부딪치는 스포츠 본연의 모습에 보다 가까워진 것도 긍정적 요소다. 랠리의 증가와 타구 시 더 많은 파워를 요한다는 점에서 유럽보다 동양인에게 다소 불리하다는 전망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공이 뻗어나가는 길이가 줄어들어 커트 주전 수비전형에 유리하고, 스피드 감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돌출러버를 사용하는 속공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그렇지만 수많은 예상과 전망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탁구 판도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재의 과도기를 지나 선수들이 수용성 접착제에 적응하고 나면 결국에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기술에 따라 판도가 갈릴 거라는 얘기다.

  국제 탁구 판도에 대한 전망도 마찬가지다. 포인트제도가 21점제에서 11점제로 바뀔 때에도, 공의 크기가 38mm에서 40mm로 바뀔 때에도 아시아가 유리하다느니 유럽이 유리하다느니 하는 여러 전망들도 함께 나왔었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었다. 이번 스피드글루 금지조치 역시 아시아와 독일의 각 나라들이 독주하는 중국을 추격하는 양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거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국제연맹의 스피드글루 금지조치는 탁구의 기술적 측면보다는 종목의 이미지 개선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ITTF는 탁구가 청소년을 위시한 일반인들에게 ‘건강에 나쁜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해 왔다. 각종 도핑 검사 등 변칙수단에 대한 감시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는 IOC의 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술에 대한 체감지수가 하락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유해물질에 노출돼온 선수들 역시 궁극적으로는 환영할만한 조치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하나다. 노-글루잉 시대를 맞은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과거의 향수를 털어버리는 것뿐이다. 어떤 형태의 변칙수단을 찾아 스피드글루의 효과를 유지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전형에 더욱 필요해진 부분을 찾아 훈련으로 보완해나갈 필요가 있다. 변화의 시대에 각 사에서 내놓는 신제품을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스피디한 현대 탁구를 선도해왔던 스피드글루는 더 이상 탁구장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국제연맹의 방침이 확고하고 규제방안 또한 선명하다면 변칙으로 용구에 의존하려는 의식보다는 기초체력을 더 키우고 기술 연마에 매진하는 정공법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너무도 당연한 진리지만 탁구는 용구보다 기술이다!

 

(인터뷰)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

오상은(KT&G)

김경아(대한항공)

유승민(삼성생명)


(표) 스피드글루와 수용성글루의 차이점


<사진>

1. 이제 경기장에서 글루잉을 하던 익숙한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2. VOC 계측기의 대표주자 이네즈(ENEZ)

3, 3-1. 국내의 탁구경기장에서도 이네즈를 놓고 라켓 검사가 실시되고 있다.

4, 5, 루페와 게이지를 사용하여 러버 두께를 검사하던 기존의 방법을 넘어 보다 엄밀한 측정을 위해 4mm 두께의 핀을 사용한 계측기도 등장했다. 러버 한가운데 두께도 측정이 가능하다.


 

출처:월간탁구 http://www.woltak.com/